※개인 감상 포스팅입니다. 




 ‘역린’. 예고편부터 캐스팅까지 어느 하나 심상찮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해서 기대를 했다.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계속 기다렸고, 시간이 없어 이제야 보긴 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최대한 대사 하나 빠뜨림 없이 귀담아 듣고 보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 몸 상태가 나빴던 탓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첫째로는 오늘 내가 보았던 관람관의 관람 매너가 아주 꽝이었던 탓이고, 둘째로는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졌던 탓’이다.


 관람 매너가 꽝인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간략히 하고 넘어가겠다. 상영 내내 핸드폰이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렸다. 사람들은 계속 들락날락 거리고, 그렇게 형성된 분위기가 어느 누구라도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게 했다. 관람객들의 예의 없음도 따르겠지만, 그 원인의 일부는 분명 앞서 말한 ‘둘째’에 있을 확률이 높다.


 ‘너무 잘 만들어졌다.’


 그래, 영화는 너무 잘 ‘만들어’졌다. 화면 전환, 색감, 심지어 캐스팅까지 내겐 그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즉, ‘예쁘고 정성이 가득 담기고 계산적으로 잘 짜인 각본 하에 또한 감독의 세세한 컨트롤로 배우들의 자그마한 얼굴 표정 하나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기어 잘 완성되어진 영화라고 느껴지긴 했으나 정작 중요한 흡입력은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영화의 초반과 후반부까지 여럿 나왔던 ‘중용 23장’의 구절은 정말 잘 살렸다고 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용 23장 -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남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감독이 전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역린’인가, ‘중용’인가, ‘상놈들의 삶’인가. 그러니까 ‘초점이 어디냐?’ 그것이 묻고 싶은 것이다. ‘왕’이냐, ‘상놈’이냐, 아니면 중용이 말하는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이냐.


 재미?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부분 ‘중용 23장에 대한 인상 깊음’이었다. ‘어떻게 이런 조합의 배우들을 쓸 생각을 했을까?’하고 참신하다 생각했고, ‘세세한 표정변화까지 담았구나’하고 상당히 신경 썼음을 느꼈고,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갈 때조차 ‘故 김종학’씨의 이름을 보고 참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심지어 크래딧마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그러나 무언가 부족한 영화. 너무 빳빳하게 다려 어색하기까지 한 와이셔츠처럼 분명히 ‘약간 벗어난 초점’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감독께선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무언가 놓친 것이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잘 만들었음에도 몇 개의 핀트가 빠져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여러 조건 때매 충분히, 흡족하게 감상하지 못해 더 안타깝다. 내 눈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물론, 앞서 말한 부족한 부분이 조금이나마 보충되어 나온 ‘잘 만들어’지고 ‘재미’까지 있는 작품을 말이다.


2014. 5. 15.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