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바둑왕] 손끝에서 빛나는 별처럼

 

 

 

 도우야 아키라, 신도우 히카루. 아키라는 자신의 이름과 나란히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9단과 8단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히카루가 가져온 종이에도 똑같이 적혀있었다. 서로의 대국을 알리는 대시합 통보지였으니 당연할까. 처음 대시합 때가 떠올랐다. 저와 히카루는 2단과 초단이었고 심지어 그땐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두지도 못했었지. 아키라는 추억하였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려보고 있자면, 어느새 히카루와 두는 것이 익숙해지기까지 한 지금이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 틈에 이 만큼이나 온 걸까? 아키라가 시선을 들었다. 어릴 적 젖살이 통통하던 볼은 사라지고 적당히 균형잡힌 청년의 얼굴이 아이의 눈과 코와 입을 용케도 담아내고 있었다. 하긴, 이제는 아이라고 부를 수 없겠다. 또래였지만 저보다도 어리숙하였던 히카루의 행동거지들을 떠올리곤 아키라가 웃었다.

 

 처음 히카루와 대국했을 때 어수룩하던 그 손놀림을 기억한다. 완전히 초보의 손짓으로 정말, 까마득하다 느껴질 만큼 아연한 수를 두는 아이. 하지만 그것은 히카루의 일부였다. 그 다음에 두었을 때는 또 얼마나 엉뚱한 수를 두곤 했었는지, 아키라는 당시를 생각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히카루를 눈에 담았다.

 

 “왜?”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생각?”

 

 히카루가 고개룰 갸울였다. 아키라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했다. 그때는 저를 놀리는 줄 알고 정말 화가 났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그 또한 히카루 나름의 진심이 아니었을까싶다. 이제는 익숙하다못해 노련한 히카루의 손모양과 그의 수순들을 바라보며 아키라가 새삼스레 물었다.

 

 “히카루. 나와 처음 대국했던 때 기억 나니?”

 

 “뭐? 처, 처음, 대국했을 때?”

 

 히카루는 당황하며 더듬더듬 입을 떼었다. 늘 그랬다. 첫만남을 이야기하면 늘 당황하고 그 동그란 눈을 굴리며 어떻게 변명해야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키라가 더는 캐묻지 않겠다는 듯이 히카루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대국중이던 바둑판 위를 바라보았다.

 

 “기억나지 않는다면 됐어.”

 

 그를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언젠가 말해주겠다고 했으니 곁에 있다보면 정말 언제인가 그 마음을 열고 말해주지 않을까? 물론 처음에는 초조한 마음에 다그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계속 함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며 함께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초조하고 다그치고 싶던 마음들은 추억이라는 잔물결에 스며들듯 사라졌다.

 

 바둑판 위로 히카루가 까만 돌을 내려놓았다. 아키라는 그것을 받아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옛날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히카루의 수들은 종종 알 수 없는 곳으로 튀곤 했는데…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키라의 수를 한 번 더 히카루가 이어받았다. 아키라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웃음이 나왔기 때문에. 아키라의 손이 곧장 그것을 받아내고 이제는 여물대로 여문 히카루의 손이 그 뒤를 이어붙인다.

 

 또 엉뚱한 수.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아키라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엉뚱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한 수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저런 엉뚱한 수에 많이 져보기도 했고… 그러니 무시하는 의미의 웃음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히카루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뚱하니 투덜거렸다. 또 이상한 수를 뒀다고 비웃는 거라면 그만하라고, 다 생각이 있어서 두는 거라고. 이어지는 변명과도 같은 말들에 아키라가 그런 게 아니라며 말했다.

 

 “히카루, 너와 두는 게 재밌어서 그랬어.”

 

 그리고, 신기해서 그랬어. 아키라는 뒷말을 삼켰다.

 

 이렇게 한 수 한 수가 빛나는 것이, 그저 두는 것만으로… 그러니까 그저 너의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이.

 

 그래서 네 이름은 히카루일까?

 

 아키라가 히카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히카루는 다음 수를 두지 못하고 쑥스럽다는 듯이 목어귀를 감싸쥐고 입을 꾹 다문 채 그 시선을 피했다. 자신과 두는 게 재밌다는 말이 그렇게 쑥스러운 말이었을까?

 

 “왜 그래, 히카루?”

 

 아키라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옛날이었다면 상대를 배려하여 잠자코 기다려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히카루와 오랫동안 함께하며 히카루에게 옮은 장난이었다.

 

 “저리 가.”

 

 홱하니 반댓편으로 돌려지는 히카루의 고개에 아키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히카루의 모습이 재밌고, 그와 함께하는 지금이 즐거웠다.

 

 그리고 좋았다. 히카루의 바둑은, 마치 그 손끝에서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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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6.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