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바둑왕] 아키라의 대국

 

 

 

 5살이 된 아키라는 얼마 전부터 아버지와 대국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 함께 끼게 되었다. 어린 아키라가 의견을 내놓길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밖에 모르는 아키라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조금 더 많은 이들의 생각과 한 수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도우야 고요가 그 장을 터주었을 뿐이다.

  

 아키라는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 그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있을 땐 생각지도 못했던 수들이 하루아침 사이에 수십 수백 개나 나온다. 아키라는 그 시간이 좋았다.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만 해서 힘들었지만 차차 적응했다.

  

 하나도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은 어느새 귀에 들어오고, 생각에 닿았다. 곧 여러 의문과 또 다른 생각들이 쌓여갔다. 비록 ‘아버지를 방해치 말라’하셨던 어머니 말씀에 따라 곧이곧대로 묻진 못했지만 기억해두었다가 모든 모임이 파하고 나서 아버지께 물어 기어코 그 궁금증을 풀어냈다.

  

 아키라는 이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의 대국이라면, 두 번째는 바로 이 자리였다.

  

 자리의 모든 이들은 아버지와 직접 대국하기도 하고, 그들끼리 두며 이러저러한 수들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아키라는 거기서 배운 수들을 보는 족족 써먹어 고요를 기쁘게 했다. 그것은 고요의 은근한 자랑거리였고, 아키라가 없는 자리에선 내심 뿌듯함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 내심이 티가 제법 많이 났기 때문에 어린데다가 항상 자리에 없던 아키라만이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의 모두는 알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나이대에 비해 집중력이 좋고, 얌전한 아키라는 이미 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귀염둥이가 된지 오래였다. 도우야 고요와 함께하는 이들, 도우야 고요 연구회. 그들이 매주 모이는 화요일엔 연구회가 열린다. 아주 귀여운 예비바둑기사님이 참석한 뒤로 연구회의 분위기는 조금 더 밝아졌다.

  

  

  

  

 조금씩 자신의 생각이 쌓이기 시작하자 아키라는 말하고 싶어졌다. 자신들의 생각을 열심히 내보이는 이들 틈에 끼어 자신도 입을 트고 함께 배우고 싶었다.

  

 아키라는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 담긴 입을 옹다물고, 꿇은 무릎 위의 두 주먹을 애써 고쳐 쥐었다. 슬쩍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는 바둑판 위에 새로운 돌을 놓고 말씀을 계속하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아키라가 곧 터질 것만 같은 입에 힘을 주고 다시 바둑판을 바라보다가 결국엔 또다시 눈을 굴리고 말았다.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하는 것이 예의인데. 아키라도 알지만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그런 수가 있었느냐며 아버지의 한 수에 놀라기 바빠 보였다.

  

 아마 이대로 가다보면 또 타이밍을 놓쳐 어제처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끝나버릴 테다. 아키라는 조급해졌다. 저도 모르게 옷깃을 쥐며 아키라는 다시 주변으로 눈을 던지는데, 연한 갈색 눈동자 한 쌍과 마주쳤다. 마치 계속해서 저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아키라가 화들짝 놀라서 바둑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잠시 뒤 청년의 음성이 들렸다.

  

 “선생님.”

  

 자신과 눈을 마주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청년의 음성에 주변이 모두 조용해지고 아버지인 고요가 그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느껴진다. 아키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굴렸다. 곧 웃은 띈 청년의 음성이 이어졌다.

  

 “아키라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봅니다.”

  

 “그래? 아키라가?”

  

 고요가 아키라를 돌아보았다. 아키라는 더욱 당황하여 아버지를 보고, 그 청년을 보았다. 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아키라를 돌아보고 계셨고, 청년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 미소에 아키라가 저도 모르게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 그에게 약간 미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어머니가 방해치 말라 하셨는데……. 이 상황은 자신 때문에 그들의 모든 행동이 중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모두 자신의 탓이다. 아키라의 눈가에 슬쩍 눈물이 걸쳐졌다. 푹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키라에게, 그 순간 모두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길을 주고 있던 지라 아키라는 하마터면 정말로 울 뻔했다.

  

 그러나 곧 들려온 음성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아키라도 이제 저희 연구회의 일원이니 이야기할 자격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저와 눈이 마주쳤던 청년이 아버지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아키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그러며 저에게 눈길을 주셨다. 갑작스런 상황에 눈을 굴려보니 주변 모두 같은 눈이었다. 화를 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들어준 청년을 보았다. 그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씩하니 웃었다.

  

 정말로 저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내내 움츠려있던 아키라의 몸이 곧게 펴졌다. 아키라의 얼굴에 환함이 되돌아오자 모두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아키라의 손엔 고요가 가져다 준 돌이 쥐여졌다. 비록 엄청난 수는 아니었지만 아이치곤 제법 먼 곳까지 바라볼 줄 아는 그 감각에 많은 그들의 칭찬이 아키라를 향한다. 부끄럽지만 뿌듯했다. 아키라가 불그스레해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고마운 마음에 청년을 보았다. 아까 마주쳤던 두 눈동자는 어느새 안경 너머로 숨어버렸고, 그 얼굴 또한 아버지를 향해있어 보기가 힘들었다.

  

 가지런히 빗겨진 청년의 금발을 기억하며 아키라가 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다음에 만나면 꼭, 감사인사를 해야지. 청년과 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청년의 이름이 ‘오가타’라는 걸 안 아키라가 그것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화요일만 되면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집에 찾아온다. 그것을 연구회라 칭하며 이제는 그에 자신도 낀다는 것을 안다. 보통 그날이 되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조금씩 이르게 오곤 했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오늘도 마찬가지로 손님 한 분이 평소처럼 일찍 오셨다는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아버지께서 일이 있어 연구회 일정을 조금 늦추셨던 날이다. 그러니까 그 손님은 거의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한단 말이었다. 어머니가 아키라에게 말했다.

  

 “아버지 대신 손님과 함께 있어주지 않겠니?”

  

 네에,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님이 누구일까 생각하며 항상 아버지가 그들을 맞았던 방으로 향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곳엔 금발의 청년, 오가타가 있었다. 아키라는 멍하니 서서 그를 보았다. 문 여는 소릴 듣고 고갤 들었던 오가타는 크게 뜨인 두 개의 눈동자에 픽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잘 있었냐?”

  

 먼저 말을 건네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답한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와서 곁에 앉는다. 근데 앉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연구회 때도 매번 이리 앉더니, 자신만 있는데도 무릎을 꿇고 정자세로 앉는다. 오가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아키라의 머리를 마구 쓸어주었다. 힘에 눌려 휘청대던 아키라가 곧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앉는다. 오가타는 참 대단하다 싶어 아키라를 계속 보았다.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양새다. 오가타가 의아한 눈으로 아키라의 머리통을 보았다. 조그마한 정수리가 제법 귀여웠다. 그래서 묻지 않고 그 머릴 또 헝클어주었다. 아키라는 또 당황하며 몸 중심을 잃고 머리에 손을 얹는다. 부러 웃지 않았음에도 오가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긴장한 듯 경직되어있던 아키라는, 곧 오가타를 따라 웃었다.

  

 “네 아버지께 부탁받았다. 자주 찾아와서 너와 놀아 달라 하시더군.”

  

 그 말이 진짜인지 어쩐지 모를 정도로 오가타의 음성은 장난기가 다분했다. 아키라가 영문을 몰라 할 때, 오가타는 방 한 켠에 놓여 있는 바둑판을 가져와 아키라의 앞에 두었다. 그리고 그 상대편에 자신이 앉고, 돌을 나눠쥔다. 아키라가 설마하며 놀라 굳어 있을 때 오가타가 말했다.

  

 “어디 명인이 자랑하신 그 실력 좀 볼까.”

  

 그는 그때처럼 씩 웃었다. 아키라가 벅찬 마음에 환하게 웃으며 네, 하고 크게 대답했다.

  

 “난 봐주는 것 없다.”

  

 오가타는 돌 몇 개를 쥐곤 아키라에게 내보였다. 아키라는 그 말에 긴장해서 진지하게 오가타의 손을 보았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오가타는 픽 웃고 말았다.

  

  

  

  

 아버지와 둘 때도 두근거리긴 했지만 지금과는 달랐다. 귓가에서까지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아키라가 꿀꺽 침을 삼켰다. 꾹 입을 다물고 떨리는 몸을 고쳐 앉았다. 아버지가 아닌 어른과 이렇게 정식과 같이 두는 것은 처음이라 그런 걸까? 아키라는 열심히 오가타의 손을 보았다. 오가타가 까만 돌을 쥐고 차근차근 둔다. 아키라도 오가타가 두는 것에 맞추어 하나하나 돌을 얹었다. 손이 떨렸다. 돌을 제대로 쥐기가 힘들 정도여서, 아키라는 이러다가 돌을 떨어뜨릴 것 같아 두기 전에 매번 다시 고쳐쥐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할 때보다도, 또래 아이와 할 때보다도 대국이 눈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 때문일까? 이어진 오가타의 한 수를 바라보고, 전체적인 형세를 훑고, 다시 자신의 돌을 쥐어 얹으려할 때 결국은 사단이 일어났다. 아키라의 손에서 앗하는 사이에 하얀 바둑돌이 길을 잃고 튕겨져 나간다. 아키라가 당황하며 다시 돌을 주우려 했지만 서두른 탓인지 너무 떨렸던 탓인지 손은 또다시 돌을 놓치고 말았다. 바둑판이 아주 엉망이 되자 아키라의 얼굴도 엉망이 되었다.

  

 어떡하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게다가 자신의 수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오가타의 수까지 어질러놓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상이 된 아키라의 눈앞에 오가타의 손이 나타났다.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무 떨지 마라. 편하게 둬. 자.”

  

 금세 돌을 치워내고 본래 두었던 것처럼 차례로 돌을 얹는 오가타의 손이 보인다. 아키라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아키라가 본래 두려던 자리에 아키라의 하얀 돌을 쥐어 얹는다.

  

 “여기 두려던 거 맞나?”

  

 확인하듯 중얼거리는 오가타의 음성에 아키라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가타는 아키라가 망쳐놓은 것을 모두 복구해놓은 뒤 제 돌을 집었다. 그러며 다시 입을 뗐다.

  

 “천천히 둬도 돼. 시간을 재는 것도 아니니.”

  

 어린아이가 떨고 있으니 자신이 괴롭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해서 오가타가 말하자 아이는 한결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듯 아키라를 향한 오가타의 음성엔 늘 웃음기가 있었다. 아키라는 그 웃음이, 곧 그의 상냥함이란 것을 깨달았다. 마음의 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키라는 어쩐지 심장소린 더 커진 것만 같아, 고갤 숙이며 다시 바둑판에 눈길을 주었다. 불안하던 것은 멎었는데 왜인지 손끝의 떨림은 그대로다. 두근, 아키라의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는 이날, 세 번째로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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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6.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