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오가타는 가만히 달력을 바라보며 톡톡 손가락을 두들겼다. 며칠 남지 않았을 때부터 고민하던 것이었다. 아키라의 생일 선물 말이다. 고민하다가 벌써 당일날이 되어버렸는데, 곧 있으면 연구회에서 아키라를 마주치겠지. 그러면 그때는 선물을 주어야할 테다.
무얼 주어야할까? 역시 바둑과 관련된 것이겠지, 생각하며 지금까지 선물해주었던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래봤자 고작 16세의 아이이기 때문에 주어봤자 열댓번이나 주었을까한다마는 그마저도 순 바둑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물론 작년엔 다른 걸 주었지만 반응이 영 석연찮아서 이번엔 제대로된 것을 주고 싶었다.
작년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아주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언제더라, 도우야 명인인 아버지와 함께 두는 바둑판 말고 자신만의 바둑판을 새로이 가지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언제 한 번은 귀여운 거북이 모양의 바둑판을 선물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아키라가 몇 살이었지? 여섯 살?
벌써 십 년 전이군. 새삼스런 표정으로 턱을 쓸며 그날 있었던 아키라의 반응을 떠올리고 실소를 터트렸다.
오가타딴에는 귀엽다고 선물해준 바둑판이, 아키라 그 꼬맹이에겐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눈이 순간 울상이 되면서 도우야 명인의 뒤에 쏙하니 숨어버리던 그 행동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결국 그건 반품하고 평범하다못해 밋밋한 바둑판을 사주어야했지만. 오가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뭐, 그건 아직까지 잘 쓰고 있으니 다행인가.
문득 그맘 때즈음의, 조그맣던 아키라의 모습이 오가타의 눈앞에 가물거렸다. 정말이지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느낌이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도우야 명인의 부인께서 힘겹게 출산을 마치시고 나서 처음 마주했던 조막만하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목을 가누고, 걷고, 뛰고, 바둑을 두며, 이제는 실력으로 저를 위협하기도 하는 존재가 되었다.
오가타 사범님, 하고 부르면서 맑은 눈을 맞추고 아장아장 걸어오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이젠 쑥쑥 자라나 덩치도 저보다 한뼘정도나 차이가 날까. 생경한 느낌에 오가타의 눈이 무언가를 가늠하듯 가늘어졌다.
그래, 이번엔 좀 더 제대로 녀석 또래의 애들이 좋아할 법한 것을 사줘볼까.
오가타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뭐가 좋을까.”
대체, 그 또래의 남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지? 저번처럼 실망하진 않았으면 싶은데. 원치 않는 선물은 없느니만 못하니 말이다. 오가타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려봐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거나 도우야 선생님의 문하에 있으며 간단한 축하를 받은 것 외에는 없었다.
그래, 그 또한 바둑과 관련된 것 말고는 선물을 받아본 것이라곤 명품 시계라던가… 오가타가 자신의 목에 메인 넥타이를 잠시 내려다보곤 매만졌다.
넥타이를 아키라에게 선물받은 적이 있긴 하군. 고개를 갸울였다가 미묘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주변에 그에 대해 알만한 사람을 떠올려보았으나 온통 그런 쪽으로는 둔해보이는 이들뿐이라서 오가타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아, 인터넷에 찾아보면 어떨까.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들 하잖는가? 오가타가 소파에서 일어나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선물….”
뭐라고 검색해야하지. 남학생 선물, 아니면 남자아이 선물…? 그렇게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생일선물’이라고 타이핑하자마자 뜨는 ‘10대 남자 생일선물’이라는 연관 키워드에 망설임없이 그것을 클릭했다.
10대 남자친구 생일 선물, 이딴 게시물이 잔뜩 나와서 오가타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못마땅한 얼굴로 웹서핑을 시작했다. 이윽고 눈에 띄는 게시글 하나를 발견하고 오가타의 눈이 그것을 한참 읽어내리다가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걸로. 바둑과 관련된 것은 이미 다른 이들이 많이 챙겨줄 테니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작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오카타는 조금 아쉬워졌다. 더 어릴 때부터 이런 선물을 주었다면 확실히 좋아했을 것 같은데. 아니, 지금도 나쁘지 않을 거다. 아직 어리니까. 오가타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이 사야할 것을 머릿속에 그려넣었다.
아버지 연구회의 다른 문하생들이 오기 전, 오가타에게 미리 선물을 받은 아키라는 포장을 뜯었다. 그리곤 상황 파악을 하기위해 행동을 멈추었다. 아니, 생각도 멈추었다.
이게 뭐지? 생전 처음 보는 데다가 심지어 예상해본 적도 없는 것이라 두 눈만 깜빡였다. 그런 아키라에게 오가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야, 마음에 안 드냐?”
“아… 아뇨, 그게.”
뚱한 오가타의 음성에 아키라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외라서요.”
아키라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음, 작게 침음하며 입가를 감싸쥐었다. 어떠한 반응도 내보이지 않은 채로 ‘원격제어 가능! 어린이 전기 자동차’라고 적힌 광고용 문구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오가타가 오개를 갸울이며 턱을 쓸었다.
“네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거라길래 사봤는데.”
아키라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여서 오가타는 약간의 섭섭함을 숨긴 채 말했다. 하지만 다 티가 나서, 아키라는 애써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 좋아요! 감사합니다, 오가타 사범님. 자, 잘 쓸게요.”
아키라의 얼굴에 비친 어색한 웃음이, 이 선물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그 표정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난다. 오가타는 눈썹을 찡그렸다.
“차라리 레고세트가 나았을까.”
작게 중얼거리는 그 음성에 아키라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선물을 개봉했을 때부터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이제 확신이 들었다. 오가타 사범님은 분명, 아키라 자신을 아직도 초등학생 꼬마애로 보는 게 분명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다음부터는 그냥 선물 안 주셔도 돼요, 사범님. 번거로우시잖아요.”
제발 주지 마세요. 속뜻을 아키라가 숨긴 채 애써 말을 꺼냈다. 사실은 작년에 주신 건담무슨… 장난감조립세트도 처리가 곤란해 방 안 구석 어딘가에 애물단지마냥 박혀있었는데 그런 게 또 늘어나는 건 곤란했다. 저가 받은 선물이니 누구를 줄 수도 없고.
“네 생일은 챙겨야지.”
오가타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키라의 간절한 마음을 거절했다. 아니요. 안 챙겨주셔도 될 것 같은데…. 아키라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눈을 굴렸다. 오가타는 장난을 멈추고 씩 웃었다. 손으로는 여느 때처럼 아키라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면서 말이다.
“앗…!”
“알았다, 다음에는 제대로 챙겨주마.”
제대로? 또 어떤 이상한 걸 주시려고? 아키라가 제 머리가 산발이 되는 것에 당황하던 것도 멈추고 다급하게 오가타를 불렀다. 오가타 사범님! 그 목소리는 오가타의 웃음소리에 묻혀버렸지만 말이다.